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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되기

죽음-감각

한 존재가 생성되어 생장하다가 소멸하고 분해되는 생물학적 주기에서 보면 한 인간의 죽음 또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흘러가는 과정의 하나이다. 그런데 ‘인간적인’ 측면에서, 소멸-죽음은 자살, 타살, 자연사, 병사, 돌연사, 존엄사 등 그 형태가 다양하게 명명되고, 각기 다른 사회-정치-문화적 가치 판단과 사후 처리가 이루어진다. 어떤 죽음은 ‘영웅 서사’의 한 장면으로 비춰지고, 어떤 죽음에는 ‘한’이 가득 서리기도 한다.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장례의 형태는 상이하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경제력을 잃지 않기 위한 수많은 노후대비정책과 연금 저축 등은 소멸의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내쳐질 것에 대한, ‘인간다운’ 삶으로부터의 추락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영혼’에 대한 공동체적 다짐은 대안 사회, 그러니까 지금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시스템의 한 그늘을 직시하게 하기도 한다. 한편, 죽음에 대한 담론화는 어느새 실제로 죽은 몸-물질로부터 서서히 멀어진다. 기호화된 죽음은 땅 위에 놓여 썩어가는 몸을 가린다. 시체는 썩어 토양이 되고, 아직 죽지 않는 몸들이 고개를 들고 자라나게끔 하는 양분이 된다. 분해와 해체의 과정은 생성과 소멸 사이를 잇는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이어지고 있을까? 무언가 빠뜨리고 있는 것은 없을까? 인간의 죽음 또한 지구를 이루는 무수히 많은 종들의 죽음과 다르지 않은 자연의 한 부분적 소멸이자 분해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각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되는 과잉과 팽창, 소비의 연속은 배를 부풀린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항문으로 빠져나오기까지의 과정, 항문으로 배설된 물질들이 순환되는 과정은 변기의 투명한 물에 의해 쉬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식량이 입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 또한 투병한 비닐 아래 감춰진다. 무언가가 나의 입에 들어가기까지의 이루어지는 정치-사회-경제-문화-자연 시스템의 복잡한 실타래를 들여다보고 풀어 보기에는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생계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도 크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감각, 나의 몸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고, 나를 이루는 피와 살이 토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것과 회피하는 것은 어떤 차이를 일으킬까? ‘나’의 예고된 죽음에 대한 앎은 지금을 이루는 삶의 풍경에 어떤 진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더 욕망덩어리가 되어 세속적인 물질들을 탐하는 존재가 될까, 서서히 비워내어 죽을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하는 일상을 살게 될까. 아니면 삶과 죽음이라는 감각을 오히려 더 무디게 만들어 그 사이를 부유하는 자아상을 추구하게 될까.

“곧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난 그게 참 낯설게 느껴진다. 난 이기적인 이라 그저 글을 계속 더 쓰고 싶을 뿐이다. 글 덕분에 내 맘속에 따듯한 빛이 자리 잡는가 하면, 글 덕분에 내 맘속에 따듯한 빛이 자리 잡는가 하면, 글 덕분에 난 황금빛 대기 속으로 훌쩍 솟구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까? 마냥 계속하는 건 옳지 않다. 염병, 죽음은 연료 탱크 속 휘발유다. 우리에겐 죽음이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하고, 네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면 여긴 쓰레기로 찬다.” (찰스 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사색

“사색은 인간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삶은 고통과 자괴감,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색을 통해 이러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 그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색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인간의 내면을 발견하게 해주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노션 AI기능 검색 결과)

思索

  • 思 생각 사, 수염 많을 새 → 생각이 많은 털
    • 心(마음 심) + 田(밭 전)
    • 思자는 ‘생각’이나 ‘심정’, ‘정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思자는 田(밭 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 索 찾을 색, 노 삭, 채소 소 → 꼬는 모양, 어떤 것과 어떤 것의 연결
    • 糸(가는 실 멱) + 冖(덮을 멱) + 十(열 십)
    • 索자는 ‘꼬다’나 ‘새끼줄’, ‘찾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索자는 ‘꼬다’나 ‘새끼줄’을 뜻할 때는 ‘삭’이라고 하지만 ‘찾다’나 ‘더듬다’라고 할 때는 ‘색’으로 발음한다. 索자의 갑골문을 보면 끝이 갈라진 실타래 양옆으로 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끼줄을 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索자의 본래 의미는 ‘꼬다’나 ‘새끼줄’이었다. 새끼줄은 볏짚을 양손으로 잡고 비비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손을 비비는 동작이 마치 무언가를 더듬어 찾는 모습을 연상케 했는지 후에 ‘더듬다’나 ‘찾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辭色, 死色, 四色

→ 색의 상징성, 의미

말과 얼굴빛,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빛, 네 가지 빛깔

관객참여형 워크숍 구상

사색오브제 만들기(3시간)

  1. [30분] 작가의 사색 여정을 함께 살펴본다.
  1. [60분] 비닐실을 만든다.
  1. [30분] 미술관 주변을 거닐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물들을 수집한다. 그 중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하나를 선택한다.
  1. [30분]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과 사물을 연결해 사색오브제를 완성한다.
  1. [30분] 이야기를 나누며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의 감각을 나눈다.

Vado Mori

느린 멸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치솟는 열기와 물기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감각한다. 그 죽음은 순환하지 못한 채 폐기되어 가장 낮은 곳에 켜켜이 쌓이고 은폐된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위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정도는 다르다. 느린 멸종을 마주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수행하며 생을 살아가고 죽어갈 것인가? 우리는 인간이다. 뇌와 손과 언어를 발달 시켜온 우리는 ‘인간과 가축’의 땅으로 지구를 점유했고, 그에 따른 책임이 시급히 촉구되는 두꺼운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떤 불편을 감내하고 책임질 것인가?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행위는 타자에 대한 인식 태도를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정치적 위치에 대한 성찰로부터 인간과 인간-너머 타자들과의 상호돌봄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지구의 부분적 행위자이다. 진핵생물역-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속-사피엔스종으로서 다른 종들의 해방에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비인간 동물을 착취/수탈해온 시스템의 윤리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장식 축산 농장과 동물원 등 동물을 상업수단으로 이용해온 장소들을 생추어리로 전환할 것을, 해당 종사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업종 전환을 위한 국가적 지원을 요구한다. 우리는 필멸하는 몸들로서 잘 죽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나를 추동하게 하는 무수한 공생자들은 수많은 점막들 사이로 넘나들고 드글거리며 태어나 죽고 분해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우리의 몸과 행위가 생동하는 물질들의 순환 속에 자리하고, 종국에는 퇴비에 이를 수 있는 분해 방식을 모색하고 수행한다. 나아가 죽음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참사와 학살, 도축과 살처분 등 불균등한 죽음 서사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차이를 인식하기 위한 질문하기와 퀴어링을 지속한다. 우리는 언제나 차이로서 존재하고 차이로부터 연대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소중한 타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는 질문들은 서로의 서사들 앞에서 자신의 무지함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미끄러질 것이고 동시에 나와 타자 사이의 키메라적 조율을 가능케 할 것이다. 우리는 미끄러짐으로부터 뒤얽히는 몸들의 난장을 환영한다 우리는 ‘우리’가 상정하는 윤리적 실천 형태를 불구화한다. 지향점이 비슷하더라도 종, 성별, 성적지향, 장애, 나이, 계급 등 각자 처한 소수자적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고 다양한 방식의 운동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교차점을 형성한다.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 돌봄과 돌보아짐은 언제나 비선형적인 시차 속에서 교차한다. 취약하고 불완전한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누구도 완전한 자립자족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의존의 스펙트럼” 속에서 삶과 죽음을 이루어간다. 살림살이와 돌봄노동을 당연시하지 않고, 상호돌봄에 기반한 뒤얽힘을 지향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우리들과 함께 한다.

요동하는 열기와 물기 그 한가운데서 인간의 죽음을 마주한다 인큐베이터에서 관으로 폴리에틸렌의 보호 아래 생을 시작하고 생을 마감하는 몸 몸은 비체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비체들은 폴리의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폴리에틸렌 안전한 우리로 쓰이다 쓸모없는 허물이 되어 버려진다 폴리에틸렌의 죽음을 마주한다 버려진 채 쌓여만 가는 듯 보였던 그 죽음은 더럽고 지저분한 자리 악취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폴리- 인공막들의 변신은 인간의 손을 떠나 모종의 자율성을 획득한다 폴리- 그것만의 방식으로 대지와 호흡하며 고개를 든다 폴리-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전혀 새롭지 않은 이 시대의 원시스프 폴리- 곤죽의 자리에서 생명들은 잉태되고 뿌리를 내린다 폴리한 시간 폴리한 사랑 폴리한 죽음 폴리한 돌봄 폴리-가 자라난다